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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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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이는 엎드리고 걸어가는 길바닥에 딱새를 들쳐 업은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 여간 거슬렸다.

두 사람의 혼백인 것도 같고 이미 죽은 혼귀들이 딱새 손에서 흐르는 피를 달라고 쫓아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진저리를 쳤다.

뒤에 시커먼 총부리를 들이대고 쫓아오는 사람 같기도 하여 뒤통수가 저려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과 절망이 살고 싶은 집념과 간절함이 뒤섞여 산길이 더욱 혼란스럽고 미로처럼 여겨졌다.

옴 자레주레 준제 사바하 옴마니 반메훔 나무아미타불.”

무일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던 주문을 외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를 따라서 읍내에 갔다가 어두워져 별학산 모퉁이를 내려 올 때 가르쳐준 주문이었다.

무일아 무섭느냐?”

“?”

옴 자레 주레 준제 사바하 옴 마니 반메 훔 나무아미타불. 옴 자레주레 준제사바하.”

할아버지는 이렇게 세 번을 외웠다.

그리고는

꼭 외어 두었다가 무서울 때는 세 번 외어라. 그러면 잡귀고 호랑이고 산적이고 모두 달아나느니라.”

무일이는 외롭고 슬프고 불쌍하고 무섭고 어깨가 무너지듯이 아팠다.

행여 밤길을 걷는 누구와 맞부딪치면 홀몸이 아닌 그로서는 재빨리 피할 다리 힘이 없는 고로

길을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산중턱으로 올라가서 나무꾼이나 목동들의 발에 밟혀 희미하게 난 산길을 헤쳐가야 했다.

누구도 이 절박한 무일이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반 쪼가리 달도, 검은 복면을 쓴 소나무도,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이며 술렁이고 있는 별들도 모두 다 근심스런 얼굴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를 못했다.

나를 가위바위보에서 이겼으면서 딱새는 뭣 하러 물 길러 따라나섰는지 원망스러웠다.

 

물론 친한 자기 동무를 해주려는 다정한 그의 마음은 알면서도 미운 생각이 들었다.

무일이는 비틀거리면서도 오직 딱새를 살려야 하고 나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팀목 삼아 꼬꾸라지려다

다시 뛰고 또 꼬꾸라지면 쉬었다가 다시 죽을힘을 다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살 것인가, 둘이가 꼭 살아날 길을 찾으려는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굴러다녔다.

 

무일이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땀방울이 스며든 눈이 쓰라려 앞을 잘 보지 못하였으나

어른거리는 산길마저 벗어나서는 안 되므로 눈을 힘주어 깜박이며 산길을 어림잡아 산언덕을 오르고 내려가고 이를 악물고 걸었다.

 서쪽으로 가는 저 달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려서 본 손오공 만화 생각이 났다.

현장삼장을 따라 불전을 구하러 서쪽나라 인도로 가고 있다면 우리도 따라갈 수 없을까.

오행산에 갇혀있던 손오공을 구해준 삼장법사는 어디를 지나가고 있기에 지리산에 갇혀있던 우리는 구해주지 않는 것인가.

등에 포대기처럼 덮여있는 딱새의 가슴과 맞닿은 무일이의 등이 두 사람의 온기가 합쳐 땀으로 범벅이 되어야 할 터인 데도

온기는 싸늘해지고 땀은 찬바람이 앗아가서 그런지 그리 끈끈하지가 않았다.

 

바위개 마을이 가까워지자 잠깐 망설이다가 대웅이 아제를 떠올렸으나 마을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위험했다.

마을 못 미쳐 한적한 텃골은 골짜기 깊숙이 김 면장네 집이 자리하고 조금 내려와서는 판길이네와 꼬막례네가 사는 오두막집이

나란히 엎드려 있고 언덕을 더 내려오면 불두덩 같은 둔덕에 소나무가 마치 거웃처럼 자라고

거기에서 가랑이같이 별학산으로 가는 길과 마을로 가는 길로 갈라졌다.

둔덕 밑의 옹달샘 자리에는 거울같이 맑은 용천수가 바닥에서 솟아올라 사시사철 넘쳐흐르는 마을 샘이 있었다.

 그 샘 조금 위에 초가삼간 오막에는 박명수 영감이 살았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고 영감 할멈 둘이서 살고 있었다.

무일이는 산에서 내려와 마을 어귀로 가서 샘에서 오른쪽 언덕길을 올라 박명수 영감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 앞에서 딱새를 등에 업은 채 망설이고 서 있었다.

 

박명수영감은 늙으면서 밤이면 꼭 한두 번 일어나서 오줌독 신세를 져야 했다. 잠이 깨자 밖으로 나가려고 담뱃대를 찾았다.

문에 사람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치고 인기척이 났나 싶더니 들리듯 말듯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상동아제.”

야밤이라서가 아니라 섬뜩한 예감에 머리털이 곤두서 다시 귀를 종긋하고 있는데

상동아제 사람 좀 살려주세요.”

목구멍에서 헛바람과 함께 섞어 나오는 작은 소리였다.

문고리를 잡은 채 방긋이 문을 열고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축 늘어진 사람을 들쳐 업고 누군가 허리를 굽히고 서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박영감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소리를 질렀다.

뉘요?”

, 저 무일이에요.”

? 무일이? 무일이라고? 네가 어떻게?”

집을 나간 후 영영 소식이 끊겨 텃골아짐씨가 기다리다 지쳐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김 면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힘겹게 들쳐 매고 겨우 고개를 쳐들어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반달 빛에 어렴풋이 보였지만

목소리까지도 틀림없는 무일이었다.

상동아제 이 사람 좀 살려주세요.”

이건? 이 사람은 누구냐?”

상동아제라고 부르는 박명수 영감은 토방으로 나갔다.

무일이가 업은 사람을 내려놓으려고 뒤로 돌아서자 받아 안아서 마루에 눕혔다. 힘없이 뻗어버린 그를 보고 상동 아제는

초저녁 콩 볶는 총소리가 나던 별학산 사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바로 짐작했다.

상동아제, 누구에게 들키면 안 돼요. 작은 방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둘을 송장같이 축 늘어진 사람을 작은 방으로 끌어들였다.

상동 아짐이 자다가 고쟁이 바람으로 뛰어 나와 무일이와 누워있는 사람을 보고 기겁을 하며 놀랐다.

누워있는 사람 오른손은 옷 같은 걸로 칭칭 감겨 있는데 온통 벌건 피가 배고 배어서 엉겨있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