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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후의 전쟁 [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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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은행나무

 

매일 숙제 때문에 매 맞는 일은 우연한 일로 해소가 되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 머리가 걸을 때마다 쿵쾅쿵쾅 울려

학교에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엄마, 나 머리 아파."

"너, 학교 가기 싫어서 그러지?'

둘째 형이 나서서 말했다.

"아니야, 진짜로 걸으면 머리가 쿵쿵거리고 아파, 걷지를 못하겠어."

"그래? 그럼 어쩌지?"

"우선, 아침이라도 먹고 생각을 해보자."

어머니께서 밥상을 안으로 들여 놓으시며 말씀을 하셨다. 다들 모여 밥상머리에서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통 밥맛이 나질 않았으며 속이 메스껍기까지 하였다.

"엄마, 나 못 먹겠어?"

"나~ 좀 잘래."

학교 가야 할 시간에 잠을 잔다니 누가 나서서 잔소리하던가?

약을 챙겨 먹이고 학교를 보내야 할 형편이지만 누구도 그럴 경황이 없었다. 큰 형은 고등학생이었고 누나는 중학교를 입학해야 하는데

집안 형편상 중학교 입학을 못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있을 때였는데 나는 한잠 푹 자고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날 학교에 갔으며 또 다시 숙제를 안 해와, 이번에는 교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청소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보내줘야 했지만 보내주시질 않으셨다.

 

친구들은 집에 가야 한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끝까지 남자고 주장하며 우리만 나무라는 선생님이 틀릴 수도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어두컴컴해질 무렵까지 기다리다 돌아오신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였다.

 

빛과 어둠, 사랑과 두려움의 양극의 구조는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었으며 내가 납닥골에서 벗어나 정선읍 이라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하기까지 어둠과 빛- 의식과 자각이 우리의 내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날부터 숙제를 못 해가도 덜 혼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숙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스스로 해오세요."

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까짓 거, 할 수 있는 만큼만 스스로 하지 뭐!" 그렇게 스스로 하는 버릇을 키워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초등학교 3학녕인 우리에게 영화 단체 관람이 예정되어 한편 보는데, 100원이었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나 신이 나고 좋은 일이기는

하면서도 그놈의 돈이 무서워 그날은 무엇보다도 싫었다. 영화를 보는 당일 며칠 전부터 가지고 오라는 돈을 가져가지 못한 우리는 뒤로 처졌으며

영화를 보는 대신 교실에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으로서는 어린 학생들만 몇 명 남겨둘 수도 없는 처지라 일단 내일 가지고 오라며 영화를 보는 곳에 합류를 시켰다.

어린 마음에 어떤 일이 있어도 엄마를 졸라 돈을 가지고 가겠다고 약속하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엄마, 돈 100원..."

"무슨 돈? 뭔 돈을 아침마다 난리야? 필요하면 미리미리 말을 해야지?"

"단체 영화 본다고 돈 달랬잖아?"

"이놈의 자식이, 우리 형편에 무슨 놈의 영화야! 없어 그냥 가..."

"어제 영화보고 돈 가져온다고 선생님이랑 약속했단 말이야...!"

"이놈이, 그래도 말귀를 못 알아듣네."

이미 학교 갈 시간이 늦었고 어머니께서도 밭에 일을 가야하는데 내가 졸라서 못 가고 계셨다. 나는 어찌하든 돈을 가지고 가서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어제 영화는 서선대사가 나오는 잼 있는 영화였다. 아직도 마지막으로 던진 은행나무 지팡이에서 정말 새싹이 나, 자라고 있을까? 궁금하였고

그들이 얻었다는 깨달음이란 어떤 것일까도 궁금하였다.

흥미 있던 내용인 만큼 그 값을 내고 싶었으며 나도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영화를 보고 즐길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당당하게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 일은 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드디어 빗자루를 찾아들었다.

"돈 안 주면 학교 안 갈 거야."

"이놈이 찢어진 입이라고 그래도 말을, 얼른 학교에 안가?"

말씀과 함께 쫓아오실 모양이시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기에 일단은 마당 바깥쪽으로 나오긴 했지만, 학교 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대로 뒤뜰로 숨어서 살구나무 위에 올라갔다.

그곳에 숨어 있으면 우리 집 마당이 환히 다 들여다보였으며 그러면서 내 몸을 숨겨주는 장소였다.

 

어머니께서는 학교 가는 아래쪽에서 내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어디 숨었는지 나오라고 혼자서 한 참을 찾으셨다.

나는 겁이 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니께서는 마냥 그러고 있을 수가 없으셨는지

밭으로 일하시러 가시면서...

"그래, 니가 학교만 안가봐라..!"

하시고는 집 밖을 나가셨다.

 

돈은 없지만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의 확고한 뜻, 자식 교육만큼은 남들보다 잘 가르켜 주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가리키고자 애를 쓰셨다.

이는 아버지께서 못 배우셔서 자식들에겐 그 못 배운 것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었지만, 아마도 모든

부모라면 다 같은 심정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 사랑의 결정에서 아이를 생각하고 그 생각이 생명이 되어 아이로, 우리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그 아이는 기쁨의 절정에서 주변의 모든 것과 하나 된 상태에서 온 우주를 느끼며 자신을 주변의 모든 구성 요소로 채우고 이 땅 지상에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자라면서 자신이 최초에 느꼈던 그 무한한 기쁨과 사랑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것이 행복이며, 이러한 자신을 느끼고

체험하는 것을 두뇌에 각인시키는 작업이 정수리가 굳어지기 전인 9살 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