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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온 팔십 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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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분은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하며 삶의 희노애락과 풀지 못한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마음으로
집필을 하셨다. 드라마틱한 군생활과 6.25를 겪은 이야기 군인으로 살면서
그 가족들이 감내하고 위로하며  어떻게 성장,발전했는지 등을 잘 보여주셨다.
요즘 자서전 쓰기가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는데 긍정적인 문화가 아닌가 싶다.

벌거숭이 맨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나온 나는 19년 동안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유소년(幼少年) 시절을 보냈다.

1949, 18세 때 어머님이 타계하시어 아버지 혼자서 7남매를 거느리고 어렵게 살았다.

또한 그 이듬해(1950)에는 북괴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벌어져, 아버지께서는 홀로 피란을 가시는 형편이 되었고,

(규철)은 인민군 의용군에 붙들려 가고, 동생(규정)마저 나를 대신하여 의용군으로 붙들려가니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나는 어린 동생 넷을 거느리고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겼으며, 동네 빨갱이의 앞잡이 문치곤이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나를 인민군 의용군에 보내려고 해서 이를 피하기 위해 낮에는 뒷산 땅굴 속에서, 밤에는 집에서 동생들과 함께 지냈다.

 

2개월여를 인민군 치하에서 겪은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50915,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UN군의 인천 상륙작전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인민군이 퇴각함에 따라 이산가족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대구 피란생활에서 귀가하시고,

동생(규정)도 후퇴하는 인민군 대열에서 탈출하여 무사히 귀가하였다. 그러나 형(규철)은 인민군과 함께 후퇴 도중

아군의 포로가 되어 마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불운을 겪었다

. 다행히도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포로 석방조치로 뒤늦게 귀가하였다. 동네 많은 청소년들이 인민군에 강제 동원되었으나

거의 귀가하지 못했는데 오직 우리집만 모두가 귀가하게 되었다.

그 당시 동네 어른들은 조상의 묘가 명당자리여서모두가 무사히 귀가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의 심정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을 받은 것이라 믿는다.

 

6.25전쟁 이후 60여 년을 객지에서 살아왔고 특히 서울에서만 50여 년을 살다 보니,

2(二世)들의 고향은 모두가 서울이 되고 말았다. 19세의 미소년이었던 내가 6.25

전쟁과 월남전을 몸소 겪고 사회에서 모진 시련을 겪으며 살다 보니 어느덧 80고개를 넘어섰다.

 

이제 손 털고 빈손으로 가야 할 시점에 이르고 보니 지난날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내가 과연 80평생을 살면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가! 돌이켜 보면 별로 내세울 것이 없지만

, 시골 촌놈이 서울 양반이 되었고, 군의 간성(干城)으로 출세를 했다. 또한 다 기울어져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데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한 가닥 보탬을 주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나의 80평생의 생애(生涯)를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필()을들게 되었다.

나의 지난 80평생을 뒤돌아봐도 유명인사들이나 위인들이 흔히 남기고 있는 자서전이나 회고록이라 할 수 없고,

다만 우리 형제들과 함께 살아온 지난날들이 너무나 어렵고 험준한 삶을 헤쳐 나와 오늘의 가정을 이루었기에,

고생을 함께 해온 형제들의 행적과 애환(哀歡)도 있기에 함께 수록하여,

여러 후손들이 윗대 어른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그들의 삶에 참고가 되고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여,

책으로 엮어 남기기로 했다.

 

또한 이 나라에 빛나는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의 20대손으로서 선조들의 역대(歷代) 연대(年代)와 그분들의 발자취를 요약 수록 하여

후손들이 참고가 되게 하였다.

한편, 근대 100여 년간의 직계조상(曾祖父祖父)의 발자취를 더듬어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의 생활과

또한 경상도(慶尙道)에 뿌리를 내리게 된 동기를 살펴보았다.